2025년 회고: 21.0975km, 진짜 마라톤은 일상에 있었다

최정은
2025/12/15

21.0975km, 그리고 진짜 마라톤의 시작

2016년부터 틈틈이 10km 마라톤에 참가해 왔다. 최근 러닝 붐이 일면서 나 역시 새로운 러닝화를 신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올해는 생애 첫 하프 마라톤(MBN 마라톤) 완주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준비 과정은 생각보다 험난했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런데 메달을 목에 걸고 숨을 고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짜 마라톤은 코스 위가 아니라 내 일상 속에 있었구나.'

2025년은 나에게 그런 해였다. 숨 쉴 틈 없이 달렸고, 코스도 난해했으며, 무엇보다 어깨에 짊어진 배낭의 무게가 달라진 해였다.

스타트업 퇴사, 그리고 내 집 마련

올해 초, 인생의 큰 결정을 연달아 내렸다. 우선 2년 가까이 몸담았던 스타트업을 떠났다. 치열하게 코드를 짜고, 동료들과 밤낮없이 토론하며 성장했던 그곳은 정말 즐거운 배움터였다. 하지만 아이(이솜)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나에게는 '폭발적인 성장'보다 '단단한 기반'이 필요해졌다. 정들었던 팀과 훌륭한 동료들을 뒤로하고 퇴사를 결정한 건, 오롯이 가장으로서의 선택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안양을 떠나 부천으로 이사하며 **생애 첫 ‘내 집 마련’**을 했다. 신혼 생활을 시작했던 전셋집을 정리하던 날의 기분은 묘했다. 세입자로서 겪은 설움에 "하루빨리 떠나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막상 텅 빈 집을 보니 시원섭섭한 복잡미묘한 감정이 스쳤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새도 없었다. 갚아야 할 대출금과 지켜야 할 가족. 이 두 가지 키워드는 나를 다시 스타트 라인에 세웠다.

첫 번째 생일, 그리고 뜻밖의 만남

부천에서의 새 삶이 자리를 잡을 무렵, 이솜이의 돌잔치를 치렀다. 이직 직후라 휴가도 없는 상태에서 준비하는 돌잔치는 그야말로 '미션 임파서블'이었다. 많은 친척을 모실 넓은 장소, 그리고 아이에게 남겨줄 예쁜 사진을 위해 마곡 보타닉 파크메이필드 호텔, 두 곳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이크를 잡고 하객들 앞에 섰을 때의 벅참은 잊을 수 없다.

우리 아이가 언젠가 이 날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사진과 이야기로 '너는 정말 많은 사랑 속에 자랐단다'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먼 훗날 이솜이가 이 날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꾹꾹 눌러 담아 인사말을 전했다. (여담이지만, 이날 호텔 로비에서 제시 린가드 선수를 마주쳐 사진을 찍는 뜻밖의 행운도 있었다. 축구 팬으로서 잊지 못할 돌잔치 에피소드가 하나 추가되었다.)

네 번째 회사, 현대자동차: IT와 제조업의 경계에서

네 번째 명함은 현대자동차에서 파게 되었다. 직급은 '책임연구원'. 단순히 회사를 옮긴 것이 아니라, 업(業)의 본질이 바뀌는 경험이었다. 처음 접해보는 모빌리티 플랫폼 도메인은 개발자로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거대 기업만이 가질 수 있는 인프라와 데이터는 분명 매력적이었다.

물론, 입사 전부터 했던 걱정이 현실이 된 부분도 있다. 제조업 기반의 문화와 IT 문화가 섞여 있는 과도기적인 조직 분위기는 자유분방한 스타트업 출신인 나에게 적지 않은 '문화 충격'이었다. 업무 메일에 닉네임을 쓰는 것이 어색하게 받아들여지거나, 오래된 유대관계 속에서 솔직한 피드백이 어려울 때는 벽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 거대한 조직이 주는 확실한 장점도 있다. 첫째, 압도적인 '안정감'과 '워라벨'이다. 덕분에 퇴근 후 온전히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설득'이라는 새로운 스킬셋의 필요성이다. 이전 조직에서 익숙하게 썼던 효율적인 도구와 문화를 이곳에 전파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하지만 기존의 방식에 익숙한 동료들을 설득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단순히 코드를 잘 짜는 것을 넘어 ’**조직 안에서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는 귀중한 경험이 되고 있다.

다시, 개발자 그리고 주린이

회사에서 채워지지 않는 '기술적 갈증'과, 집을 사고 난 뒤 찾아온 '경제적 현실'은 나를 또 다른 도전으로 이끌었다.

회사 밖에서는 온전히 내가 주도하는 개발을 하고 싶어 블로그를 리팩토링했다. 최신 기술 스택인 Next.jsNotion API를 연동하고, 아키텍처로는 **FSD(Feature-Sliced Design)**를 도입했다. 회사 업무와는 별개로, '만드는 즐거움'을 느끼며 개발자로서의 폼을 유지하려는 나만의 생존 전략이다.

동시에, 텅 빈 통장을 보며 주식 시장에도 입문했다. 외벌이 가장으로서 통장 잔고가 제자리걸음인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컸기 때문이다.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먼 '주린이'다. 내가 사면 떨어지는 걸 보니 확실히 지금이 고점인 것 같기도 하다ㅋㅋ. 하지만 이 또한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이해해가는 과정이라 믿는다.

마치며: 2026년을 준비하며

2025년은 '개발자', '가장', '주린이'라는 여러 개의 이름표를 달고 숨 가쁘게 달려온 해였다. 때로는 낯선 문화에 부딪히고, 때로는 육아와 대출금의 무게에 휘청이기도 했지만, 결국 완주해냈다.

이름표가 많아진 만큼 책임감도 무거워졌지만, 그만큼 내 삶의 볼륨도 풍성해졌다. 다가올 2026년에는 이 이름표들이 서로 시너지를 내어, 조금 더 능숙하게 달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2026년에는 한 가지를 더 진지하게 붙잡아 보려 한다. AI를 ‘검색’이나 ‘코드 자동완성’ 수준에서 끝내지 않고, 나의 개발 방식 자체를 바꾸는 도구로 쓰는 것.

단순히 빠르게 만드는 것을 넘어, 요구사항 정리 → 설계 → 구현 → 테스트 → 배포/운영까지의 전 과정을 agents와 함께 굴려보고 싶다. 프론트엔드, 백엔드, 인프라를 각각 따로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 영역을 연결해 실제로 서비스를 끝까지 “돌릴 줄 아는 개발자”**가 되는 것.

작고 단단한 서비스라도 직접 배포하고 운영하며, ‘내가 만든 것이 사용자에게 닿는 경험’을 쌓아가려 한다.

말뿐인 다짐으로 끝나지 않도록, 내년의 나에게 보내는 구체적인 퀘스트 리스트를 남겨본다. 내년 이맘때쯤엔 모든 박스에 체크(✅)가 되어있기를 기대해 본다.

🚀 2026 목표

건강 & 가족

  • 주 3회 헬스장 출석: 육아도 일도 결국은 체력 싸움. 생존 체력 기르기.
  • 가족 여행 & 사진 남기기: 우리 가족의 시간을 예쁘게 기록하기.

AI 활용 & 성장

  • Agents 기반 개발 루틴 만들기: 기획/설계/구현/테스트/리팩토링을 AI와 함께 ‘반복 가능한 프로세스’로 정리하기.
  • Frontend + Backend + Infra 한 사이클 완주: 작은 기능이라도 E2E로 만들고 운영까지 경험하기.

사이드 프로젝트

  • 나만의 서비스(앱) 배포: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기획부터 배포까지 온전히 내 손으로 만든 서비스 런칭하기.

경제

  • 투자 원칙 세우기: 남석관 님의 <손실 없는 투자 원칙> 완독하기
  • 가계부 리팩토링: 소비 패턴을 철저히 분석해서 낭비되는 지출 줄이기.